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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전시] "자손子孫들" 황태하 개인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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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4-09-10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 : 234 | |
‘자손子孫들’ _ 황태하 개인전
바벨탑이 인간의 욕망을 보게 했다면, 작가의 <하늘마을 3.4단지>, <하늘을 향하는 방법>에서 나무는 하늘과의 교감을 이루며 나무의 끝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일까 숲속의 동물과 새소리 보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달리는 차 소리에 익숙한 나무이지만 어느 동네 공터에 홀로 떨어져 있어도 작가의 나무는 <딱히 외롭지 않다>. 개천가를 거닐 때 산책길 잡초 덤블 사이에 종종 눈에 띄는 검정 <비닐봉투>. 어떤 바람 부는 날 이 <비닐봉투>가 마트의 물건 대신 바람을 가득 담은 채 춤추듯 훨훨 날아가는 걸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목적과 상징이 분명했던 건물과 인공물이 그 목적을 상실했을 때 가차 없이 쓰레기로 둔갑한 아이러니 <이제 가도 됩니다>. 이와 반대로 <쓸모> 없어 보여도 자연이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갈 가치가 충분한 <나무와 풀> 시리즈. 작가는 인공미로 가득한 도시의 혼잡함 속에서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통해 자연의 비밀을 발견하고 그 교감 속에서 삶의 가치와 조건을 반추한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이는 도시 속 삶은 어쩌면 언제 밟힐지 모르는 보도블럭 사이 잡초와도 같다. 작가는 그나마 온전히 살아있는 잡초를 찾아내 화폭에 담는다. 풀 한 포기를 통해 원시와 문명 사이의 공간을 확보한 자연의 불가항력적 생명의 힘, 그 우월함을 표현한다. 이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자연의 몸짓이자 태초부터 있어 온 땅의 언어이기도 하다. 뽑히거나 밟힐 수도 있지만 제 모습을 무방비 상태로 전부 드러내 놓는 나무와 풀.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어도 자유롭고 늘 새로울 수 있는 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자손들>이 콘크리트 아래 땅의 양분을 지속적으로 서로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모든 땅은 그들의 근원이자 그들의 자리이다. 그들의 고향이 반드시 숲이 아닌 까닭이다. 반드시 <양지> 바른 곳, 꼭 여기, 저기가 아니어도 흙이면 족하다. 그들이 결코 잃어버리거나 잊은 적이 없는. 그러므로 도시 어느 틈새에서도 하늘을 향해 자라나며 살아남는다. 도시의 불안한 바람도 그들을 결코 멈추지 못한다. <중앙로>의 가로수가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잠시라도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듯 작가의 작품이 우리 인생의 건널목, 기다림 속에 시원하고 따뜻한 가로수가 되어준다. 글, 기획/ 박은선 “나무나 들풀은 인간에 의해 이리저리 이식되기도 하지만, 보통 그 삶과 죽음이 한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삶에 대해서 자주 생각합니다. 식물과 땅이 만나는 곳에서 나의 입장을 대변해 줄 장면을 오랫동안 찾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들이 한 장소에 갇혀있는 존재라 생각했습니다. 갇힌 사람들, 눌린 사람들,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접하며 나는 갇힌 몸에 대해 생각해 왔습니다. 나도 갇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갇힌 사람들의 해방은 공간적 구속의 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양분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나무의 자손들, 들풀의 자손들은 자기들이 머문 땅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그곳을 새롭게 합니다. 땅은 그곳에 있고, 새로워지는 것은 나와 내 이웃들과 우리의 아이들일 것입니다. 들풀과 나무의 생이 매번 나에게 이런 삶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황태하 작가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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